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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6기 결과보고전
비탈길을 좋아했지

2021.2.18 ⎯ 2021.4.25
강인수, 김건일, 박혜수, 범진용, 장은의, 장재민, 전가빈, 조가연

전시개요

 전시명 :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6기 결과보고전
                《비탈길을 좋아했지》

⋄  참여작가: 강인수, 김건일, 박혜수, 범진용, 장은의, 장재민, 전가빈, 조가연(총8명)


⋄  전시기획 : 이은주

⋄  전시기간 : 2021. 2. 18.(목) ~ 2021. 4. 25.(일)

⋄  전시장소 :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  관람시간 : 평일 11:00 - 18:00ㅣ주말 및 공휴일 11:00 - 18:30 | 휴관일 없음

⋄  관람료 : 3,000원 (카페 이용 시 관람 무료)

⋄  주최 및 주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대행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확산 예방을 위하여 별도의 오프닝 행사는 진행하지 않습니다.

전시내용

비탈길을 좋아했지

“프란츠 카프카는 비탈길을 좋아했지 온갖 종류의 비탈길에 마음을 빼앗겼어. 경사가 급한 비탈길 중간에 서 있는 집을 바라보기도 좋아했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그 집을 바라봤다네. 물리지도 않고, 한 번씩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똑바로 세우기도 하면서. 좀 별난 사람이었지.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나?”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중에서

 
이 전시의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중의 채프터 제목인 “프란츠 카프카는 비탈길을 좋아했지”에서 따온 것이다. 한참 바빴던 작년 여름, 이런저런 걱정거리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의 내용에 매료되어 밤새워 완독하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발간 당시 하루키의 역사의식에 대한 열띤 토론거리를 제공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내게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집대성하여 정교하게 형식화한 서사로서 이해되었다. 미술대학을 나와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며 살던 주인공이 한 원로 화가의 작업실에서 완벽한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고, 그 그림 속 인물이 실체화되어 현실에 나타남으로써 주인공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예술작품이 단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계의 반사체가 아니라 진실이 되는 표상임을 강조하는 이 이야기의 맥락에서, ‘비탈길을 좋아하는 카프카’는 예술가가 서 있는 자리를 의미하는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착안하여 이 전시에서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위치한 곳을 ‘비탈길’로 상정하였다. 기획자로서의 나 자신 역시 이 비탈길의 동행자일 것이다.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6기 입주작가들의 결과보고전이기도 한 이 전시에서 ‘비탈길’은 창작촌이 위치한 광덕리 174번지의 오르막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전시는 8명의 작가들이 그 비탈길을 올라 작업실에서 보낸 긴 시간 위에 찍는 하나의 방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회로부터 현실적인 사람이기를 요구받지만, 사회적 통념이 지시하는 ‘현실’이란 생산과 능률과 자본 획득을 목표로 하는 대단히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토대와 동일시된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동력, 꿈, 기억, 감정처럼 언어화조차 불가능한 유동적 세계는 모두 ‘비현실적’이기에 온당한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사회적으로 체계화되어 제도적 힘을 갖는 통념들의 바깥에 서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또 다른 세계에 형태를 부여하고 실체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눈과 마음과 손으로 물리적인 대상들 위에 엷게 떠 있는 또 하나의 자리를 만든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보다 정신적이며 유연하고 자유로운 것들을 위한 자리이다. 불분명하고 모호하기에 누구나 다니는 대로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취약하지만 아름다운 그 자리가 분명하게 현실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들은 오늘도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을 한다. 이 전시의 도입부를 작가들의 작업의 원천이 되는 출처나 노트, 드로잉으로 시작한 것은 예술작품이 결국 작업실에서 생각하고 노동했던 시간의 결과이며, 예술작업이야말로 작가들이 바라보는 가시적 풍경, 정물, 사회와 유비관계에 있는 또 다른 현실의 자리를 창조하는 일임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풍경을 기조로 하는 강인수, 김건일, 범진용, 장재민, 조가연, 정물을 다루는 장은의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외부의 물리적인 대상들을 어떻게 내면화하여 그들이 감지하는 또 다른 현실의 투사물로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인수는 주변 풍경에서 문득 느낀 생경함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그 불편한 낯설음의 정체를 추적하듯 그려나간다. 범진용은 작업실 주변 잡풀들의 뒤엉킴을 강약의 에너지가 교차되는 붓질로 전이시켜 회화적 생명력이 넘치는 또 하나의 자연을 창조한다. 장재민은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인식이 뒤섞여 있는 불명료한 상태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 경계선이 없는 덩어리와 같은 실체를 감각적으로 포착해낸다. 또한 조가연은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에 수반되는 시간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움직임과 감정이 개입되어 흡사 생물체처럼 동적으로 느껴지는 산수풍경을 그린다.


한편으로 김건일은 물리적 대상 세계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섬망적이고 유동적인 기억의 생태를 숲으로 시각화하여, 녹아내리듯이 액화되거나 흔들리는 숲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일상적 정물을 모티프로 하는 장은의의 경우, 과일들과 그릇, 빛의 관계를 정교하게 조율하여 연출하고 촬영한 후 다시 그리는 방식을 통해서 순도 높은 이상적 균형의 결정체를 시각화하고 있다.


보다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박혜수, 전가빈의 작업은 맹목적인 집단적 통념에 균열을 냄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개입시킨다. 박혜수는 관람자로 하여금 사회가 지배가치를 유포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보통’이라는 기준의 허구성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며, 개인의 심리적 영역이나 시(詩)적 세계가 보존되면서도 공적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느슨한 관계의 거리를 제안한다. 전가빈은 미디어에 의해 맹목적으로 추종되는 집단적 가치들을 우상으로 설정하여 기념비적 형태의 시멘트 구조물로 구축하며, 쉽게 파열되고 부식되는 표면을 통해 이러한 우상들의 위태로움을 주지시킨다.


이처럼 이 전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세계와 유비관계를 지니면서도 또 다른 차원에 있는 현실을 창조한다. 관람자들이 이 작품들 안에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작가들이 작업실에서 창조하는 세계가 비생산적인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구체적일 수 있는 현실임을 느낄 것이다. 물리적 세계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 비탈길에서 바라본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실상 존재하고 있으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들의 귀환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글 ㅣ 이은주 (독립기획자,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