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지점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의 세계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바깥쪽은 추상적이고 큰 이미지들이, 예컨대 거대담론에 가까운 평화, 세계, 정치, 희망, 절망, 슬픔과 같은 큰 개념의 이미지들이 밖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다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작고 구체적인 이미지 혹은 느낌들이 숨어있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많은 경우 제일 바깥에 있는 이미지들, 그것에서 출발한 개념을 가지고 그림을 읽고 이해한다. ‘바깥쪽의 이미지’, 즉 외부 현상이나 대상의 표면을 통해 큰 얼개를 파악한 이후에 그 상황 속에서 겪었던 일이나 감정을 떠올린다. 전시는 이 지점에 주목한다. 인물과 일상, 풍경, 추상적 요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 2인이 보여주는《가속지점》은 대상을 은유 혹은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물’ 즉 ‘바깥쪽’의 이미지를 통해 사물(대상)을 접하는 개인의 경험이라는 내밀한 영역으로 들어가보고 – 그것이 가능하다면 – 비가시적 영역에서 이들이 집중하는 지점을 짚어보는 것이다.
때문에 이 전시는 작가들 스스로의 경험과 이전 작업과의 관계를 확장하며,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경유하여 작업의 시도와 사유를 조금 더 멀리 굴려보려 한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만연해진 일상의 욕망이 개별화되는 양상,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사건으로부터 오는 외상 후 충격 장애와 그로 인한 감정의 변이가 다른 층위로 전환되는 과정을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다. 그 경로에서 결과물로서의 이미지가 새롭게 발현되는 어떤 지점, 바로 그 장소에서 자신의 방식과 시선으로 대상을 재정립하고 재감각하면서 가속해가는 지점, 그리하여 본질적 사유로 흘러가는 어떤 지점을 보여주려 한다. 이들은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동인, 즉 일상과 특정 사건, 현실과 가상, 소통과 갈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 상호작용하며 공감할 수 있는 동시적인 감정, 그 지점을 건드린다. 그것이 이 전시의 시작이다.
정고요나는 일상의 감정 혹은 SNS에 부유하는 욕망의 편린을 관조하며 공감의 이미지로 재구축한다.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무수한 대상과 현상에 만연한 관음적인 시선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페인팅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하던 작가는 온전히 평면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캔버스 안에서 페르소나를 시각화하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장면들과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평이한 풍경 그리고 평범한 삶의 방식은 ‘노출하는 쾌감’과 ‘훔쳐보는 욕망’이 혼재된 상황으로 뒤바뀐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 아니 현실이 부재하고 진실과 허구의 구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완벽한 자태의 가면을 쓴 주인공은 소비하고 소비되고 욕망을 재생산한다.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이것이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며 이미지로서 공유되는 상황은 일종의 성취감을 안겨준다. 보여지는(to be seen)것과 보는(to see)것이라는 양가적 현상은 허구와 진실을 오가며 진실한 소통을 왜곡한다. 작가는 욕망이나 갈망의 감정이 도드라지는 순간 혹은 너무 익숙해져서 감정이 사라져버린 삶의 장면을 프레임화 시킨다. 정지된 듯한 화면에서 완벽하게 연출된 장면은 일상 속 감정이 켜켜이 쌓이듯 구축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이때 보통의 일상은 특별한 사건이 되어 아우라를 발산한다. 파편화되어 무감각해진 감정은 다시 낯설어져 독특함을 넘어 마치 숭고한 어떤 사건처럼 느껴진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허구의 완벽한 이미지가 구축되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허구의 실재를 재생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이미지에서 우리의 평범하고 때로는 남루한 현실의 지금 이곳은 특별한 장소와 공감의 순간으로 가속된다.
조재는 특정한 사건에서 야기된 이미지의 시각정보를 제거하거나 해체하여 평면작업 혹은 평면적인 입체작업으로 재생산하거나, 사건에 대응하는 감성이 깃든 오브제를 수집하여 병치한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의 트라우마를 불확실한 모호성으로 치환한다. 재난 장소의 위치를 점선면으로 벡터화하여 매끈하고 모나지 않은 평면, 흐르듯 날렵한 모서리, 날카로운 꼭지점을 가진 평면적인 입체로 전환하는데, 이는 사건에 가해지는 폭력 그리고 왜곡된 진실이 사실이 되는 현상을 통해 원본이 변이되고 번역되는 은유를 반영하는 것이다. 벡터의 입력과 출력 사이의 변수와 오류, 오탈자 사이에서 기록되지 못한 정보들이 발생한다. 기표를 떼어내 자신만의 프로토콜로 변환하여 본체를 읽히지 않게 제거하는 행위는 사건의 왜곡과 변질에 대한 재해석이다. 디지털에서 원본을 변용하는 프로토콜은 원본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원본을 만든다. 작가는 가상의 결과물을 입체로 구현하면서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를 평면화시키고, 여러 곳에 군집한 입체를 통해 새로운 공간과 거리를 만든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물리적 공간으로 고정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서사가 있으며 서로 관계하며 변화하는 공간이다. 보통의 삶이 있는 장소이지만 재난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만 흐른다. 거대한 사건과 연관된 감정과 공간을 해체하여 자신만의 프로토콜로 다른 질서를 부여한 그 곳에서,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 사건은 다시 일상화된다. 평면작업에서 나타나는 한없이 부드러운 거대한 흐름의 붓질과 색감은 내면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외부의 사건에서 촉발된 감정을 촉매삼아 새로운 작동기제로 운영되는 공간, 지시성도 방향성도 없지만 열려 있고 충만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정고요나, 조재 두 작가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편린이나 차고 넘치는 욕망들, 극복하기 힘든 거대한 사건에서 각기 자신만의 감정을 번역하면서 스스로의 ‘가속’되는 지점을 생성해낸다. 인간은 생존에 불필요한 정속(定速)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며 가속되는 것을 특이사항으로 간주한다. 생존에 필요한 가치와 정보만을 특이점으로 인식한다. 일상은 삶의 토대이고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은 일상의 파괴이기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속의 지점’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작가들은 해체와 재구축을 통해 새로운 구조와 원리를 구축하고 보통의 삶 속에서는 감추어져 있는 특별함을 공명 시키고자 한다. 이미지가 난무하고 시각 정보가 차고 넘치고 다양한 층위의 차원이 공존하고 예기치 않은 비가시적 현상들이 가득한 시대,《가속지점》을 통해 이들이 각자의 사건에서 가속되고 서로 맞닿아 공유하는 순간을 이루길, 나아가 그것이 관람자의 감정을 증폭시켜 새로운 국면의 ‘가속지점(Acceleration Point)’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글 | 원채윤
Acceleration Point
The world of images surrounding us consists of multiple layers. Large, big-word conceptual images, perhaps closer to major discourse subjects of peace, the world, politics, hope, desperation, and sadness, make up a hard, durable, outermost surface enclosing those ideas or feelings of a smaller and more detailed nature. Our understanding or interpretation of an artwork generally departs from the outlying images. We first identify the overall picture via the external phenomena or the superficial surface and then recall events or emotions we may have experienced in such a situation. Accelerated Point, a mixed-themed duo exhibition about figures, daily life, landscapes, abstracts, etc., hones in on this point. The show hopes to gain access to the intimate, personal experiences of viewers – who meet the subject by way of the “end product” or “outer layer” resulting from the process of metaphorically expressing or reproducing it – and should that be possible, take note of the things they are drawn to in the nonvisual realm.
This presentation intends for the involved artists to expand their experiences and relationships with their previous works, thus further broadening the scope of experimentation and contemplation via various mediums and methods. It closely examines the phenomenon of widespread individualization of day-to-day life desires on social media and the process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and related emotional changes through the works of the two artists to view how they are transformed into a different tier. In that process, the show will introduce the stage when an image is newly formed as a resulting output, the accelerating point where the remade subject is reestablished and reevaluated via the artist’s own method and perspective, and thus, when the process of fundamental contemplation begins. These points provoke in viewers the interactive and relatable simultaneous feelings that arise once one moves away from the structural problems of seemingly contrasting causal factors – such as everyday life and a specific incident, reality and fiction, and communication and conflict – and that is where the exhibition takes off.
Jung Goyona meditatively observes emotions of daily life or pieces of desire found adrift on social media to reconstruct them into relatable images. She used to express her uninvolved voyeuristic perspectives regarding the many ideas and phenomena on social media through the interactive medium of live painting. She has since moved over to painted frames and captures on canvas an array of emotions that visualize personas. Mundane, passing scenes of everyday life, uninspiring, plain landscapes, and ordinary ways of life transform into situations mixed in with “the thrill of exposure” and “voyeuristic desires.” Jung shows perfect-looking but disguised protagonists in an unreal, fictitious world or a situation absent of reality that makes discerning fact from fiction impossible, reproducing the desire to consume and be consumed. Expressing personal emotions that stir the desires of others and become shared as an image comes back as a sense of achievement of sorts. But the simultaneous yet contradictory states of “to be seen” and “to see” shift back and forth between fabrication and being true and distort genuine communication. The artist captures in frames pronounced occasions of desire or yearning or painfully habitual moments in life that are, as a result, without emotion. The seemingly still, perfectly staged scenes come to us as dimensional frames, like emotions that stack daily, the very mundane shining bright to become the dazzling event. Fragmented and desensitized feelings become unfamiliar again, coming to us like a sublime incident that is beyond distinctive. As a result, a perfect fictitious image, more realistic than reality, is formed. It is as if the artist is trying to reproduce the existence of the fabricated. And through her images, our ordinary and, at times, our raggedy reality of the now pick up acceleration, heading for that special someplace and the moment of resonance.
Jo Jae is known to remove or dismantle visual information of images triggered by specific incidents to reproduce them as surface or flat dimensional works or collect and line up objects that embody the spirit and feelings of an incident. The artist supplants the trauma of incidents of social controversy with uncertain obscurity. The location of a disaster site is turned into a dotted-lined vector, converting it into a flat three-dimensional structure with smooth, non-angular surfaces, fluid yet keen edges, and sharp vertices. Jo metaphorically shows how an original becomes varied and translated, like when violence is exercised on an incident, making distorted truth into facts. Variables and errors occur between the input and output of vectors, and so does unrecorded information between misprints. Removing a signifier and converting it into one’s own protocol to render the main unit unreadable is the reinterpretation of the distortion and adulteration of an incident. In the digital realm, a protocol that transforms the original will produce an entirely different original. The artist flattens out location indicators by giving three-dimensional form to virtual outputs, creating new spaces and distances through structures clustered in various places. The incident site is no longer a fixed physical area but an ever-changing space with complicated narratives. It was a place of ordinary lives, but the disaster destroyed everything, and only time we can never get back passes into oblivion. Jo dismantles feelings and spaces relating to the incident and attempts to normalize the still traumatizing event at a place where she assigned a new order using a protocol of her own. The brushwork and colors of immensely delicate and gigantic waves present in her surface work soften the blow internally. Her space, one run on a new operating mechanism using the emotions triggered by external events as catalysts, has neither order nor direction, but is open and saturated with a fulfilling landscape.
Jung Goyona and Jo Jae generate their respective points of acceleration by translating their emotions regarding such things as easily dismissed pieces of ordinary life, countless desires, and overwhelming huge events. Human beings cannot recognize fixed speed, something unnecessary to stay alive, while viewing acceleration as a thing of significance. Only those values and information required for survival are considered special. Because day-to-day life is the foundation of life itself, and a threat to existence is the dismantling of daily life, we cannot help but be attracted to the “acceleration point” the artists create. They dismantle and reconstruct to set up new structures and principles to resonate the extraordinary hidden in ordinary life. We live in a world flooded with images, overloaded with visual information, filled with unexpected nonvisual phenomena, and where various layers of dimensions co-exist. Accelerated Point will allow the artists to accelerate in their respective events, come together, and share their experiences, thereby amplifying the viewers’ emotions so that all new states of “acceleration points” can be created.
Chaeyoon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