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을 바라보며, 그 속에, 귀를 기울이며
1. 마음 속 깊이
삼킨 말들을, 그러니까 지금은 묵음이 되었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던 말들을 생각한다. 내가 꺼내지 못한,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 말들, 나에게 맴돌며 남은 말들이 여기에 있다. 말들은 타격에서 비롯되었다. 이 접촉면은 늘 불현듯, 나에게 날아오듯이 찾아와 만들어진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던 나에게 날아온 타격은 나의 입을, 마음을, 생각을, 뒤흔든다. 흔들고 나면 태도나 표정으로 반응이 드러난다. 하지만, 모든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인 필터링은 나에게서 떠나는 감정과 나에게 머무는 감정을 공존하기도, 서로 떼어놓기도 한다. 상대에게 도달한 감정이 모두 진심인가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삶에서 우리가 수없이 경험하는 소통의 접점에서, 나는 반응과 진심을 일치시키기도, 아예 분리하기도 한다. 나에게 머무는 감정이 좋을 수만 있다면, 반응이 더는 피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타격들은 흔적처럼 남아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지만, 여기에는 뿌리를 깊이 내린, 나의 반응이자 마음이 있다. 얼마나 깊은 곳으로 가버렸을까. 적어도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로 마음은 겉에서 멀어져 버렸다.
2.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여러 겹을 이루는 마음은 기억하기 위한 층을 간직한다. “반복은 나에게 수행이다. / 감정을 정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 그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확인하는 일이다.”¹ 김률희의 말처럼, 그의 회화 작업에는 깊이를 알아가는 절차가 보인다. 백토와 분채를 섞어 붓으로 덮어가는 과정은 결코 무(無)로 향하지 않는다. 표면에 보이는 백색은 소리가 두텁게 가라앉은 지층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기에는 꺼내지 못한 소리로 채워져 있다—복잡한 마음과 감정들. 그것들은 지워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꺼내지 못한 채 속을 맴돌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김률희의 회화를 본다. 표면 아래, 숨 쉬는 곳이 있다. 붓질의 반복을 보일 때, 그의 작품은 애써 지우려는 노력이 아닌, 여러 번 곱씹은, 그러나 끝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을 위한 곱씹음이 있다—마음 한 구석에 맴도는 말들이 있음, 그 말들을 위한 몸짓. 백색은 더 이상 백색에 그치지 않는다. 붓질의 반복을 통해서 백색의 침묵은 벗겨진다. 진솔한 마음을 담는 한 획 한 획이 층을 이루어 깊이를 만든다. 이 깊이는 반응이나 타격을 더 깊이 밀고 가는 시선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평면 하나로 덮어놓을 수 없는 감정들은 스며들고, 층을 이루고, 획으로 긁어내듯이 백색의 표면을 건드린다.
3. 백색에 맴도는 말들
반복은 강박적일까—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을 덮어버리는 경험만큼 강박적인 것도 없지 않을까. 《고요가 남긴 자리》에 소개되는 김률희의 회화는 백색이 차지하지만, 어쩌면 그 색은 하나의 빈 공간처럼, 다방면을 아우르는 감각을 공명하게 해 주는 장이 될지도 모른다. 백색의 표면은 사실 공간적이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감정들이 머무는, 깊이를 가진 곳이다. 또한 김률희의 백색은 타격을 입은, 얼룩이 많은 곳이다. 지우려는 몸짓과 남기려는 몸짓이 그의 회화 작업에서 포개어진다—백색을 만듦과 동시에 백색으로 화면을 덮음은 과장되지 않은 솔직함을 향한다. 솔직한 말은 백색을 시각적으로 이루는 동시에 그 백색을 파쇄한다. 그러면서 이곳에 감정의 근거지를 찾아 수행적으로 그 감정을 다듬어간다. 백색은 기초적이며 아무것도 없는, 그러니까 무채색의 공간처럼 보인다—어떤 요소가 가미되기를 처음부터 거부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백색을 볼 때, 사라진 것과 사라짐을 강요받은 것은 서로 납작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하얗다고 생각할지언정, 실은 그 안에 넘실대는 것들이 있다.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태동한다고 하기에 그것은 수동적이다. 하지만, 이 움직임은 외부에서 받은 억압에 맞서 묵묵히, 꾸준히 발화하며, 대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김률희는 백색을 모든 것이 순수히 비치는 장으로 만든다. 난반사와 울림을 허락하면서, 백색은 내밀한 깊이로 내려간다.
글 콘노 유키